《카페 느와르》(2010), 첫잔이 쓰디슨 술자리
《카페 느와르》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에 하나이다. 선화(정유미)가 영수(신하균)에게 자신이 겪었던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는 장면인데 롱테이크이다. 내가 봤던 가장 긴 롱테이크가 아닌가 싶다. 간만의 명장면을 보게되어 기분이 꽤 좋다.ㅎ
선화(정유미)를 비롯해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꽤나 독특한 말투를 가지고 있는데(특히 여성들은 더욱) 익숙치 않은 그 어투가 영화를 보는 내내 신경이 쓰였다. 정성일 감독은 그 말투가 자신의 말투라고 했는데,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선화를 연기한 정유미의 어투도 독특했는데, 다른 인물들의 대사와는 달리 신경쓰인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정유미의 연기력과도 연결되있는 문제일 수도 있지만 내가 그렇게 느낀데에는 다른 요소가 더 컸다. 실제 내 주변에 선화와 거의 흡사한 어투를 지닌 지인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외모도 말이다. 이런 개인적 경험때문에 난 선화의 캐릭터에 더 몰입하게 된것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매우 신경쓰였던 인물들의 말투가 '현실성이 떨어지는 요인'이라던지 '감독이 특별히 주문한 영화적 장치'라는 식의 해석은 과도한 해석일 수 있다.
정성일 :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시면 이 영화의 대사가 하나도 이상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 제가 평소에 이러하게 얘기 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농담처럼 이렇게 문어체 네이티브 스피커가 있을 수 있는가 했습니다. 물론 농담입니다. 이 영화 속의 대사들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뿐 아니라 제가 마지막 인용을 했다고 밝혀놓은 책으로부터 가셔온 대사들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카페 느와르>에 나온 배우들의 몸으로, 목소리로 열정과 영혼을 담아서 그것이 살아 움직이는 대사처럼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 책들을 읽을 때마다 그 문장들이 살아서 말해져서 제 귀로 듣고 싶고 싶었습니다. 그것을 현장에서 제일 먼저 헤드폰으로 들을 때 정말 행복했습니다.
정유미 : 정말 그렇게 말씀 하세요. 좀 전에 얘기하실 때 ‘제 이야기를...’ 시나리오에도 그렇게 되어 있어요. 의도적으로 하라고 하신 건 아니지만, 글이 띄어져 있거나, 문장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마침표가 있거나... 지금 말씀하시는 것과 비슷해요.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계속 드는 의문은 '왜 하필이면 제목이 카페느와르일까'. 물론 영화속에서 소설에서 인용한 카페인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등장하고, 영수(신하균)이 등장하는 주요 장면들도 카페가 자주 등장한다. 이별에 대한 카페인의 역할과 의미는 알겠지만 왜 느와르일까. 도시적이고 암울한 느낌의 장면들은 느와르적 특징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느와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어쩌면 《카페 느와르》는 정성일이 개척하는 새로운 영화의 영역일 수도 있겠다. 정성일의 말투(사람들의 말투에서 풍겨져 나오는 인상에 민감하다, 말투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도 어떤 영화도 흉내내기 힘든 개성임에 분명하다. 그 개성적인 말투와 대사들 그리고 분위기, 화면구성들은 어느 영화들의 오마주일 수 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정성일만의 개성인 것이다.
《카페 느와르》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백야>의 문학으로부터 적지 않은 것을 (단지 인용 뿐 아니라) 가져왔다.
베르테르처럼 ‘이뤄질 수 없는 불륜’의 사랑에 아파하던 영수(신하균)는, 자신의 사랑을 선점한 압도적 대상을 향해 울분을 터뜨리려 하지만, 이에 실패하고 스스로의 죽음으로 자신의 세계를 파괴하는 방법을 택한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난다. (정성일은 “베르테르의 죽음을 막고 싶었다”고 했다.) 죽었지만 죽지 않은 영수는 (영화는 그가 어떻게 살아났는지 친절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현세이지 않은 현세에서 (영화는 이를 흑백으로 처리한다.) 울고 있는 여성에게 손을 내미는 <백야>의 남성으로 전환한다. -B급 낭인 "<카페 느와르>,애정의 강박을 떨치지 못한 몽타주의 한계"
정성일 감독은 느와르 영화에서 등장하곤 하는 '악녀'를 벌하거나, 자신을 버린 여자의 남편을 죽이는 뻔한 이야기 대신 에스프레소를 마시듯 그만의 방식으로 아픔을 곱씹는다. 이별에 아파하는 영수가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많다. 홍상수 영화에서는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데 소주는 주인공들의 욕망을 우스꽝스럽고 단내가 펄펄나게 만드는 반면에 《카페 느와르》의 커피는 토할 정도로 쓰디쓰다.
《카페 느와르》는 홍상수영화의 장면들이 중간중간 삽입된다. 그것 때문이 아니더라도 홍상수 영화를 좋아한다면 그리고 B급 영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추천해주고 싶다. 가볍게 보고 카페에 앉아 가볍게 수다를 떨어라. 그리고 나서야 집에 가는 버스안에서 광화문의 야경을 보면서 슬픔에 빠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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