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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kech

2010 마천루 찬가



그렇게 생각이 든 것은 야마노테선의 전차 안에서였다. 나는 문 앞에 서서, 표가 없어지지 않도록 꽉 손에 쥔 채 유리창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의 거리 ..., 그 풍경은 왠지 나의 마음을 어둡게 했다. 도시 생활자가 연중 행사처럼 빠지는 저 낯익은, 흐릿한 커피 젤리와 같은 저녁나절의 어둠이었다. 어디까지고 빽빽이 들어서 있는 빌딩과 집들, 둔탁하게 흐린 하늘. 가스를 내뿜으면서 열을 짓는 차의 행렬, 좁고 가난한 목조 아파트(그것은 나의 집이기도 하다)의 창에 걸린 낡은 무명 커든,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무수한 사람들의 삶, 프라이드와 자기 연민의 끊임없는 진폭. 이것이 도시다.

그것은 차안에 매달려 있는 한 장의 광고와 뭣하나 다르지 않다. 새로운 시즌을 위한 새로운 입술 연지에 바쳐진 한 장의 카피. 실체 따위는 아무데도 없다. 헛된 것을 파는 자와 헛된 것을 사는 자에게 지탱되어 팽창을 계속하는 거대한 중개인의 제국...

"도대체가"하고 그녀가 말했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오후의 마지막 잔디밭≫ 무라카미 하루키


광화문의 '스폰지 하우스'에서 영화표를 끊고 조금 걸으면 광화문의 거대한 마천루들의 뒷편으로 나있는 걷기 좋은 길이 있다. 영화표를 잊지 않도록 잘 챙겨넣은 후 이어폰을 끼고 캔커피를 하나 사서 걷는다. 난 이 지긋지긋한 자본주의의 물신에 반대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방법론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이다. 그럼에도 난 자본주의의 물신중의 물신인 마천루를 사랑한다.

내가 소개하는 이곳은 매우 흔하면서도 새로운 곳이다. 아마 대부분이들에겐 별것 아닐것이 분명하다. 광화문에서 서대문 방향으로 나있는 큰길가의 왼쪽편으로 늘어선 빌딩들의 뒤쪽길을 말하고 싶다는 거다. 대기업이 상주해있는 이 빌딩들의 출입구는 여러가지 동상이나 타이포그라피등의 아디어넘치는 장식으로 저마다의 자존심싸움을 하는 듯하다. 그러나 늦은 저녁시간 이 빌딩들의 뒷쪽 모습은 다르다.

그때는 거의 아무도 없을 뿐더러 빌딩들이 서로 자존심을 내세우지도 않는다.(여전히 화려하긴 하다) 차도 잘 다니지 않기 때문에 조용하고 몽환적이다. 내가 이런 분위기의 길을 걸으면서 일종의 영화속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활홀감에 빠진단 말이다. 영화 무간도에서 두 스파이가 옥상에서 대면하는 장면을 굳이 옥상이 아니라 이곳에서 찍었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다. 내가 그것들을 사랑하는 것은 (영화)구경을 통해 욕구를 충족시키기 전에 (영화)주인공이 되는 환각을 주는 마천루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도시라는 것은 나의 의지에 의한 존재라기 보다는 도시가 주는 환각에 의한 존재일 뿐일지도 모른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닌 줄 알면서도 난 여기에 여전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