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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

와이키키 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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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삶은 아름답다

  그러나 솟아오른 분수가 그 정점에서 분기하듯 삶도 사랑도 가장 행복한 시절로부터 갈라선다. 고등학교 시절의 행복한 네 명은 각각 약사, 환경운동가, 공무원, 그리고 딴따라가 되어 다시 만난다. 이들 중 누가 행복하고 누가 불행할 것인가. 영화는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지난 시절의 친구들은 이제 이해관계로 얽혀 서로를 상처입힌다. 음악은 말이 없어도 서로의 존재를 교감시키는 무언의 언어였지만, 싸늘하게 응고된 현실 속에서는 어떤 말도 상대방에게 가 닿지 못한다. 음악은 타인을 위한 연주가 되어 버렸다. 존재들의 원이 차별없이 불쬘 수 있는 하나의 모닥불은 사라져 버렸다. 발가벗고 춤추는 단란주점의 닫힌 공간 속에서 음악은 건조하고 생명없이 흐르는 기계음에 불과하다. 나이트클럽이라는 하나의 공간 속에서 무대와 댄스홀은 같이 있지만 서로 격리되어 있다. 그러나 설사 그러해도 영화는 '삶은 아름답다'고 말한다. 비록 날품팔이 딴따라의 인생일지라도, 그 음악이 비록 타인만의 축제를 위한 것일지라도, 연주할 수 있는 무대가 있고 들어주는 청중이 있다면, 이 배반당한 삶들도 아름답지 않느냐는 물음표를 영화는 조심스럽게 달아 두고 있다. 성우가 옛사랑과 함께 무대에서 연주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나는 것도 '그러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는 메시지일 것이다. 마지막 장면의 노래를 잠깐 음미해 보자.

  "지나간 세월 모두 잊어버리게 당신없이 아무 것도 이젠 할 수 없어 사랑밖에 난 몰라"

  어쩌면 사랑만이 이 배반당한 인생들을, 상처입은 영혼들을 어루만지고 일으켜 세우는 힘일 것이다. 아니 영화는 음악의 본질이, 예술의 본질이 사랑이 아니냐고 묻고 있는 듯하다. 상품기획으로 고안되고 이미지로 포장된 음악이 아니라 삶의 실천이자 삶 그 자체인 음악만이 이 불행한 시대 속에 희망을, 망각의 시대 속에 기억을 되살릴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나는 사랑만이 '서러운 세월만큼 안아'줄 수 있고, 사랑만이 고통스런 과거의 상처를 살펴 핧아줄 수 있다는 이 유행가 가사만큼 진부한 전언을 오랜만에 되새김 질 해 본다. (작성자 metahollic)

2007/08/29 13:20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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