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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ocracy

오바마 당선, 미국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지난 주 11월 4일 저녁 미국에선 한창 대선 투표가 진행중이었다. 거의 오바마의 당선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나는 미국의 대선에 관심이 많은 지인들과 토론을 할 기회가 생겼다. 오바마의 당선이 정치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미국사회의 변화의 열망이 실제로 실현될 것인지에 대한 가능성을 점치는 것은 정확한 과학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바마가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

무엇보다 지난 8년간 부시와 공화당이 저지른 일들이 오바마의 당선의 주된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를 보면 미국 의료문제의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손가락의 두개 잘린 노동자가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못해 한개의 손가락만을 살릴 수 밖에 없는 장면은 새삼 한국의 의료보험에 비해 턱없이 비인간적인 미국사회에 대해 놀라게 만든다. 이것은 미국 의료계의 이윤을 보장해왔던 정책들의 결과물이다.

빈곤문제도 심각하다. 미국 노동자들의 연 평균 노동시간은 유럽에 비해 1달이나 더 길다. 실질임금은 계속 삭감되어 왔고, 한 가구당 평균 8개의 신용카드를 가지고 돌려막기를 하며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6명 중 1명은 집을 팔아도 빚을 다 갚지 못한다. 이 때문에 6명중 1명의 어린이는 하루 1끼이상 굶는다. 공화당은 '자립심을 키워야 한다'며 급식관련 정책을 후퇴시켜왔다.

흑인의 차별도 여전하다. 과거 5,60년대 처럼 노골적인 차별은 사라졌지만 실질적인 차별이 교묘히 진행되어 왔다. 60년 후반이후의 거대한 민권운동을 잠재우기 위해 채택한 오래된 정책이다. 이 때문에 미시시피주에서는 흑인 3명 중 1명꼴로 투표권이 없다. 범죄에 대한 비민주적이고 지능적인 처벌 때문인데, 대부분 흑인들을 겨냥한 것이다. 지금 미국의 젊은 층의 흑인들은 대학에 있는 흑인보다 감옥에 있는 흑인이 더 많다.

무엇보다 부시의 가장 큰 범죄는 이라크 전쟁이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감이 공화당 후보에 대한 불신 중 가장 큰 원인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이라크와 아프간에 무려 9000억 달러를 퍼부었다. 가난과 차별, 경제위기에 대한 불안감에 불만이 가득차 있는 서민들이 봤을 땐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임에 틀림없다.

부시와 오바마의 차이점이라고 하면 사실 많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점 하나는 오바마가 평범한 사람들의 고통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시와 멕케인 같은 자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재벌출신 한나라당 의원 정몽구가 얼마전 서민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의 비용을 몰라 벌어진 헤프닝은 정말이지 그들에대한 역겨움을 느끼게 했다. 부시는 미국 서민들과의 공통점보다 정몽구나 이명박과의 공통점이 더 많은을 것이다.  때문에 오바마가 출연한 오락프로그램의 시청자가 4000만명이 넘었다는 사실에 반해 이명박은 당선되자마자 100만명이 광화문에 나와 시위로 화답했고, 부시는 방문하는 나라마다 수십만의 시위대에 둘러쌓여야만 했다.


오바마가 미국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오바마가 상처입은 미국의 서민들의 열망을 대변하여 당선이 된 만큼, 그가 실제로 얼마나 미국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은 중요하다. 어제(11일) 한겨레 신문에 박노자씨의 칼럼이 실렸는데, 꽤 부적정인 어조로 오바마에 대한 기대를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글이었다.  박노자씨처럼 막무가내로 오바마에 대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으며 그에대한 열망을 비하하듯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즉, 서두에 오바마가 당선된 이유들에 대해서 여러가지 얘기를 한 것처럼 오바마의 당선은 실제로 미국의 노동계급의 불만의 표출인 셈이다. 실제 미국 사회 변화의 원동력도 '오바마'그 자체가 아니라 '변화의 열망'을 가진 다수의 못가진 자들이 되야한다는 점에서 냉정하게 오바마를 비판하기 전에 그 열망에 대한 지지가 첫걸음이 되야하지 않을까.

서민들의 열망을 가지고 당선된 오바마는 참으로 머리가 아플법하다. 왜냐하면 가장 작은 개혁조차도 걸림돌이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서의 의무, 즉 미국을 넘어선 세계의 패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과 미국의 대기업들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는 압력이 존재한다. 바로 이때문에 '내가 당선되더라도 초당적 정책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과 그와 비슷한 내용의 발언을 일정하게 해왔다.

'초당적'이라는 것은 공화당이니 민주당이니하는 당의 정책 차이를 뛰어넘은 미국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쟁(미국 패권 유지)이다. 그도 그럴것이 미국 역사상 큰 전쟁들의 대부분은 민주당이 저질러온 일임을 상기한다면 '초당적'이라는 말의 함의를 충분히 알 수 있다.

그의 '이라크 전쟁 반대'는 테러와의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는 쿠바 경제 봉쇄를 지지해왔고, 차베스를 맹비난 했으며, 아랍 민중을 대변하는 정치단체인 '하마스'를 비판해왔다. 그는 이스라엘의 베타적 권리를 지지한다. 이런 사실은 공공연히 미국 언론에서도 밝혀왔던 바이기 때문에 놀랄일은 아니지만, 상당히 모순적인 것이다.


오바마를 마틴 루터 킹에 자주 비유하곤 한다. 하지만 킹 목사는 강력한 부의 재분배를 주장했던 급진좌파이다. 오바마는 부의 재분배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분배라고 불릴만한 그의 정책은 고작 '일자리를 만들면 기업의 세금을 공제해주는 정책'정도인데, 분배라고 하기엔 실효성이 별로 없다. 그 외에 주택차압을 3개월 미뤄주겠다고 했는데, 이도 고통을 서서히 주는 차원이지 고통을 줄이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 감세정책은 1년에 1인당 60만원 정도이고, 퇴직연금 조기 인출을 가능하게 해주겠다는 것도 돈을 더 주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자신의 돈을 일찍 만질 수 있게 하는 정도이다. 실질적인 분배는 군비축소, 부유세 같은 정책이 어느정도 가능하게 해줄 것이지만 민주당은 그것을 실현할 수 없다. 민주당의 기부금 90%는 대기업으로부터 나온다. 월스트리트도 멕케인보다 오바마에게 돈을 준 이유가 바로 그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후보로 보았기 때문이다.

미국 뿐만 아니라 한국과 세계 곳곳의 서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신자유주의 정책은 클린턴 정부가 강력히 추진해왔던 것이다. 오바마 캠프의 다수가 클린턴 경제팀에서 왔다. 클린턴 정부 동안 복지가 대폭 삭감되었고, 미혼모들을 공격했다. 100대 기업 CEO의 부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90년 초반 84배에서 클린턴정부 말에는 475배 증가) 반면에 수감자수도 2배 증가했다. 지금 미국의 부는 상위 1000명의 부자들이 쥐고 있다.

진정한 변화의 힘

위의 사실들이 이제 더이상 희망을 갖지 말자는 것으로 결론내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미국을 실제로 변화시켰던 미국 민중들의 숨은 역사가 "No"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끝나버린 낡은 역사가 아닌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연속성있는 물결이다. 86퍼센트에 달하는 압도 다수의 사람들이 "공민권운동의 목표에 동의한다"고 말한다. 88퍼센트가 기업 경영자들을 전혀 신뢰하지 않거나 거의 신뢰하지 않고, 74퍼센트가 미국 재계의 문제들이 탐욕과 부도덕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마이클 무어)

세기 말에 벌어진 미국의 운동은 매우 새로웠다. 패배했다고 생각되던 미국 노동조합의 운동은 자본의 심장부에서 열고자 했던 WTO회담을 저지시켰다.(시애틀시위, 1999) 이 운동은 노동조합만의 운동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여러 운동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시애틀에 모여 세계 체제 자체에 맞서 싸웠다. 이 새로운 운동을 이끄는 조직자들의 다수는 젊은 시절에 공민권, 평화, 반핵, 환경등의 쟁점과 관련해 활동했던 세대이다. 이 운동은 2003년 수백만명이 거리에 나와 전쟁반대를 외치게 했던 중요한 구실을 했다.

미국의 패권에 대한 작지않은 도전들이 지금의 변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는 이 패권을 위해 줄을 놓지 않으려 할 것이다. 대신에 그는 이라크가 아니라 아프간이나 파키스탄에서 패권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의 행동은 미국과 전세계 민중의 열망과 충돌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때 미국의 노동계급이 오바마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오바마에게 계속 희망을 걸것이냐, 아니면 저항하고 그들이 직접 변화를 이끌 것이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