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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

유쾌한 발견 <I Heart Huckabees, 2004>

이대역 근처 한 중고 dvd 매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러셀 감독의 영화를 보다.

난 항상 dvd를 충동구매해서 나중에 후회하게 되어버리는 몹쓸 낭비를 계속 해오고 있는데, 이번에 구입한 영화는 몹쓸 낭비가 아니다. 내방엔 드디어 소장가치 있는 몇 안되는 dvd가 하나 더 늘게 되었다.

감독은 데이빗 O. 러셀. 2004년에 이 유쾌한 코메디를 만든 러셀은 나에겐 <쓰리 킹즈, 1999>를 만든 감독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 봤기 때문에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심각한 전쟁문제를 독특한 유머로 풀어나가는 이야기였다. 잘 뜯어보면 매우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었다는 평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내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이라고 하면, 정말이지 흘려듣길 바란다. 정말 기억이 안나면서도 아는 척 하는 몹쓸 버릇이 있거든;; 아무튼 이 영화를 접하고 <쓰리 킹즈>를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탐정과 스파이
그의 영화는 미키 사토시의 <거북이는 이외로 빨리 헤엄친다, 2005>와 닮은 점이 많다. 두 영화는 모두 엉뚱한 재치로 넘쳐난다. 전적으로 두 감독의 독특한 컨셉임에 분명하다. 그 재치의 출발점은 주인공의 따분한 일상에 고집스레 파고드는 아주 웃긴 탐정(스파이)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더 재밋는 것은 부부 탐정(스파이)이라는  사실, 그 탐정(스파이)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모두 자국에서 인정받은 배우들이라는 사실, 그리고 지독하게 집착스런 엉뚱 기발한 수사력을 충실히 보여준다는 점까지 모두 비슷하게 연출된다 .

좌: 영화<거북이...>의 잠복중인 부부 스파이, 이제 눈빛만 봐도 웃기다
우: <I Heart...>의 도청 수사중인 부부 탐정, 전혀 비밀스럽지 않다

<I Heart...>에서는 부부 탐정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실존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주인공의 일상을 파헤친다. 탐정과 주인공이 만나는 계기는 단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탐정의 명함이 들어있더라'는 어뚱함이다.(누가 넣었을까?) <거북이는...>에서는 부부 스파이가 주인공의 무의미한 일상에 헤집고 들어와 너무나도 비밀스런 '스파이'질에 동참시킴으로서 '의미'있는 일상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스파이와 만나는 계기는 사토시의 영화에서 더욱 기발하다.(영화를 보기바람: 너무나도 재치있는 에피소드 이므로 말하면 재미가 떨어질것 같다)

아마 두 영화속 탐정들은 두 감독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실존을 파헤치고자 보낸 진짜 스파이가 아닌가 싶다. 카메라의 시선으로 관객을 속이는 데에만 몰두했던 영화들과는 달리 영화속으로 스파이를 보내 세상을 휘젓고 다니게 한다. 사실 그들은 정말 스파이가 아닐까?

그런데 그들은 전혀 탐정스럽지도, 스파이스럽지도 않다. 정말이지 전혀 비밀스럽지 않단 말이다.

두 번째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조연으로 연기하는 주 드로와 아오이 유우다. 두 캐릭터는 주인공의 경쟁자로서 설정되어 있다. 사실 주인공이 가진 실존의 문제는 두 조연으로부터 출발한다. 주인공이 가지지 못한 뭔가를 가지고 있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인식하면서 그들로부터 삶의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는 점이 비슷하다. 사실 두 캐릭터를 병렬적으로 놓고 본다면 매우 다른 캐릭터다.  내 눈에는 매우 매력적이면서도 연민이 가는 그런 존재로 보여지더군.

두 조연의 한 장면. 그들도 한 웃음 주는데에 부족함이 없다. 영화에서 찾고 있는 '실존'이 행복을 말하는 것이라면, 무엇보다 두 영화의 감독은 주인공만이 아니라 두 조연에게도 '행복'찾기 라는 과제를 던져주고는 결국엔 고통스럽게 만들어버린다. 남의 고통은 나의 행복일까?

<I Heart...>의 주인공은 환경운동단체의 리더이다. '허커비스'라는 기업이 친환경적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그를 이용하면서 지지자들이 그를 외면하면서 고통에 빠진다. 젊은 나이에 결혼했지만 해외 멀리 남편을 보낸 <거북이는...>의 주인공은 무료한 주부의 일상에 괴로워하고 있다. 결국 두 주인공은 자본주의 체제의 중요한 톱니바퀴에 끼여 괴로워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한 해답을 기대한다면 재미없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톱니바퀴를 따라 도는 것을 거부하고 뭔가 '주체성'을 찾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복잡해 보이지만 어쩌면 단순하고, 지루해보이지만 어쩌면 유쾌한 것일수도 있다.

출연하는 배우들의 필로그래피를 굳이 나열하지 않겠다. 이 두 영화를 본다면, 아마 당신은 두 감독들의 다른 영화들을 찾아보게 될 것이다. 사토시 감독의 최근작 <텐텐, 2008>이라든지 <인더풀, 2005>, 드라마<시효경찰, 2006~2007>도 볼만한 영화다. 데이빗 O. 러셀의 영화는 잘 알려진 <쓰리 킹즈, 2000>말고도 <앵커맨, 2004>이 볼만하다.

주저리 내용을 나열하지는 않겠다. 그러기엔 좀 지치기도 했다. 어거 뭐 영화리뷰 하나 쓰는데 2시간이 넘게 걸린다. 암튼 신경써서 포스팅 할 만한 영화들이기도 하다. 12월 말, 흥분된 크리스마스 시즌과는 달리 취업과 경제위기로 인해 고통해 빠져 특별한 오르가즘의 충족이 필요하다면(아마 그런 사람 많지 않나 싶다)이 두 영화를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당부할게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이대 근처 라멘집에서 라멘을 먹어보라. 만약 그 라멘이 아무런 특색도 없고 그다지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다면, 평범한 라멘맛을 욕하지 말지어다.  그 집 주인은 눈에 띄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평범한 라멘을 만들어내고 있는 잠복 스파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