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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ocracy

현지활동가로부터 듣게된 타이 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실

광주항쟁

내 어머니의 30년 전 광주항쟁의 기억을 몇일 전 듣게되었는데, 당시 현장에 있지 않았던 어미니의 경험만으로도 절절한 무언가가 내 가슴을 울렸다.

"난 그때 대전에 있었는디, 518되기 전에 대전에서도 맨날 시위를 했어. 죽은 네 형있재? 내가 니 형을 임심해가지고 만삭이 다되었던 때였재. 근디 갑자기 진통이 시작되서 택시를 타고 병원을 가는디, 어찌나 차가 막히던지... 그때 바로 시내에 시위대들이 가득혔었어. 그때 그 기억이 생생해부러. 아무튼 그때만혀도 광주에서 무슨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몰렀어. 근데 몇 달있다가 광주에서 근무하던 늬 아버지 후배들이 대전으로 연수를 오며는 꼭 우리집에서 묵었는디, 밤새도록 광주얘기를 해주는디 시체가 논두렁이고 어디고 온데 널부러져있구 거리에두 아무렇게나 있다그랬어. 우리는 그네들 얘기를 밤새 듣고 같이 울기도 하고 그랬재. 얼마나 끔찍했을까이. "

이와같은 광주항쟁이 타이 방콕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그것을 레드 셔츠 운동이라고 부른다. 금요일(28일) 저녁 <레프트21>이 주최하는 강연회가 프라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렸다. 이 강연은 태국의 '광주항쟁'으로 불리었던 일명 '레드 셔츠 운동'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활동가의 연설이었다.

"100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누가 테러리스트인가

군대와 맞선 레드셔츠의 무기는 새총이었다.

타이 방콕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비파르 다오마니(타마삿 대학교 교수)는 "100명이상이 사망했고 2000명 이상이 중상을 입었어요"라며 끔찍한 참상을 얘기했다. 군부는 붉은 셔츠를 입은 사람들을 모두 죽였다고 했다. 심지어 Coke(콜라)옷을 입은 Coke배달원도 죽음을 당했다. 빨간 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5월 19일 20일 경에 일어났던 일이다.

레드셔츠 뿐만 아니라 외신기자들도 죽음을 당했다. 일본 로이터 통신 기자와 이탤리, 프랑스 기자들도 죽음을 당했다. 그들이 진실을 취재하려 했기 때문이다.

많은 시민들이 수용소로 끌려갔다. 너무나도 광주항쟁과 닮아있다. 대학교 1학년때 학생회실에서 우연히 보게되었던 광주항쟁 사진집의 끔찍한 사진들이 떠올랐다.

태국정부와 모든 태국 언론은 레드셔츠를 테러리스트로 묘사한다. 그들이 군대를 동원해 레드셔츠를 진압하는 방식은 '국제적인 방식'이라고 치켜세운다. 위 사진을 보라 과연! 국제적인 독재정부다! 전두환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누가 진정한 테러리스트인가?!

그리고 그들을 '국왕을 모독하는 자'로 몰아세운다. 태국의 국왕모독죄는 한국의 국가보안법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정부에 반대하거나 억압에 저항하는 모든 것을 '국가보안법'이나 북한과 관련시킴으로서 마녀사냥을 벌이는 '보안법'이 태국에도 존재한다. 태국은 어렸을 때부터 국왕을 신성시하도록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TV를 틀면 5분마다 국왕을 찬양하는 광고가 나"올 정도이다. 유치원에서는 하루 세번 국왕을 찬양하도록 배운다. 이런 사회환경을 이용하여 현 군부를 지지하는 언론들이 레드셔츠를 '국왕 반대자'로 매도함으로서 손쉽게 젊은 사람들이 쉽게 이 운동을 지지하지 못하도록 한다.

붉은 셔츠 운동의 오해 "탁신은 진정한 대안이 아닙니다"

비파르 다오마니 교수의 생생한 증언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붉은 셔츠 운동은 독재에 맞선 민주화운동이다. 그러나 국내 TV뉴스나 신문을 보면 마치 탁신(전 총리)지지자와 아피싯(현 총리)지지자 또는 국왕지지자들과의 패싸움 정도로 묘사한다. 역시 광주사태라고 불렀던 것처럼 타이사태로 묘사되고 있는 거다. 비파르 다오마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탁신은 진정한 대안이 아닙니다. 지금은 동맹이지만 오래갈 수 없습니다. 그가 다시 총리가 된다면 또다시 누군가는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레드셔츠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싸우는 이유는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인을 선출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녀가 이렇게 말한 것은 태국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실제 탁신 집권기에 남부의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고 증언한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자본가이기도 하고, 억압적인 정부를 운영했고, 무엇보다 부패했다. 그도 아피싯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권위주의 정부였다. 그러나 레드셔츠가운데 상당수가 탁신을 그리워하거나 그가 돌아오길 바란다(탁신은 해외 망명 중). 왜일까?

간단히 얘기하면 그가 포퓰리스트였기 때문이다. 우선 탁신 집권동안 산업화를 상당히 진전시켰다. 당연하게도 그는 이 성과를 자기 자신과 자본가들의 몫으로 대부분 가져가게 했는데, 그러면서도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지지를 받기를 원했다. 탁신은 경제성장의 일부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눴다.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후하게 지원했고, 유학을 가더라도 졸업시까지 지원하는등의 복지 혜택을 갖추게 했다. 이 때문에 매우 가난한 태국인들은 탁신을 지지한다. 이 역사적 상황을 간과하면 사태의 본질이 흐려지기 쉽다. 진실을 얘기하는 언론은 매우 희박하고, 정부는 그것을 기필코 감추려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레드셔츠 운동의 본질은 태국의 민주주의를 쟁취하려는 민중의 '민주화운동'이고 그들의 희생과 저항은 항쟁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그녀가 강연 참가자들에게 했던 질문이 떠오른다. "여러분이 저라면 누굴 지지하시겠습니까?" 사실 그녀는 다시 태국으로 돌아간다면 정부에게 잡혀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자신의 나라에서 벌어진 항쟁과 희생이 값진 투쟁이 될 수 있도록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진실을 알리고 있는 셈이다. 자신의 친구인 어느 교수도 지금 수용소로 잡혀갔다고 한다. 대학의 활동가에게는 출두명령서가 나온다. 그들이 레드셔츠를 지지하는 발언이나 행동에 함께했기 때문이다.

"내일 태국으로 귀국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공항에서 체포되어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대사관에서 시위를 해주시겠습니까?"

나는 뜨거운 박수로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강연 뒷풀이 장에서 "전 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목숨을 받칠 각오가 되어있어요.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이라도 말예요" 나의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인 그녀의 용기가 나에게도 전해지는 것만 같다. 아 광주의 영혼이여, 태국의 영혼이여. 만일 민주주의가 진정 그들의 것이 되는 날이 온다면 그대들의 희생덕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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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붉은셔츠와 타이 민주화 운동의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