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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

<빌리 엘리어트 Billy Elliot>(2000)

감독 스티븐 달드리

출연 제이미 벨(빌리 엘리어트), 진 헤이우드(할머니), 제이미 드레이븐(토니 엘리어트), 게리 루이스

나온지 8년이 지났고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많은 추천을 받아왔던 영화를 이제야 보게된다. 빌리 엘리어트, 주인공의 이름을 딴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엘리어트라는 소년이 꿈을 이뤄가는 평범한 성장기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시네21의 한 기사에서도 그 정도의 평을 한 기사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명적?인 영화였다.

비유를 하자면 이 영화는 크게 두가지 그림이 펼쳐진다. 큰 그림은 영국 대처 집권기에 있었던 광부파업이고, 작은 그림은 광부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한 가족에게 일어나는 소년의 이야기이다. 어쩌면 그저 같은 시기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 말고는 크게 연관성 없어 보이는 두 사건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볼 수록, 보고 나서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영화가 만들어낸 두 그림의 오묘한 연관은 꽤 복잡하면서도 절묘하다.

80년대의 영국 광부파업은 이 영화가 나오는 2000년 까지 오랫동안 패배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영국의 노동계급에겐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당시 파업의 패배는 노동계급에게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작용했고, 노동당의 우파들에겐 기회를 가져오게 했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토니 블레어가 부시의 더러운 2중대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과 떼어놀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작은 그림인 소년의 혁명은 파업의 패배와 모순되게도 해피엔딩을 그린다. 어쩌면 소년의 이야기는 (무의식이건 의식적이건) 과거의 트라우마를 이겨내려는 영국인들의 바램일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몇년 후 영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전세계적인 반전운동이 벌어지고 영국인들은 토니 블레어를 권좌에서 끌어내게 되지 않았던가.

결국 남자에게는 금기처럼 여겨지던 발레를 끈기있게 해내고 결국 마지막 공연장면에서 날으는 모습은 역사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좌절의 시기를 패배로 인정하는 순간이 패배한 것이다.'

또한 이 영화가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소년의 발레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생계유지의 고통을 인내해야만 하는 파업을 그만두지 않고서는 힘들다는 것이다. 전체의 이익은 개인의 이익과 모순되는 것일까? 어쩌면 간단히 보이는 답이지만 인간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던 거대 담론의 좌절을 포스트 모더니즘이 어루만지는 지금, 개인과 전체(조직)의 문제는 결코 식지않는 논쟁점이다. 이에 대한 빌리 엘리어트의 답은 꽤 현명하다.(영화를 꼭 보세요~ㅋ)

우리 고민의 출발이 개인으로부터든 더 거대한 담론으로부터든, 중요하지 않다.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우리 인생의 고민들을 해결하는데 꽤 좋은 실마리를 이 영화가 줄 지도 모르니 꼭 감상해보시길...

*이 영화의 OST 조차 복잡 절묘한 선곡이었다. (빌리엘리어트 OST에대한 평을 보고자 한다면 대중음악평론가  성기완씨의 글을 참고하시라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3003002&article_id=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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