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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종로1가 무미건조한 마천루 지하, 헌책방, 마광수


 


어제 잠을 거의 잘 수가 없어서, 오늘 집에 도착 하자마자 잠이 들었다. 새벽에 걸려온 전화 덕분에 잠에서 깨어 요즈음 새벽을 압도하는 을씨년 스런 차가운 안개를 보면서 생각에 잠기게 되버렸다. 오늘 저녁에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종로1가에 최근 '아름다운 가게'에서 열게된 헌책방을 찾아갔다. 아직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안내가 전혀 없어 꽤 헤매게 되었다.

오늘 다 읽게 된 <행복의 건축>에서의 알랭 드 보통이 불평하곤 했던 무미건조해 보이는 마천루와 비슷한 오피스텔 빌딩 지하에 바로 헌책방이 있다.(요새 이 책 때문에 건물들을 훑고 다니는게 습관처럼 되고 있다; 아무튼)

아직 새집의 냄새가 코를 시큼하게 하고 못질 소리가 매끈한 대리석 벽을 미끄러져 날 어지럽게 만들었던 그 공간은 무미건조해 보이는 마천루의 지하에는 으레 있음 직한 장소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버라이닝'의 랩퍼가 앞치마를 두르고 그곳의 매니저로서 새로 들어온 간사?에게 헌책방의 구석구석의 돌아다니며 헌책방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그의 낮으면서 결코 무겁지도 않은 목소리가 헌책방의 구석구석을 채우는 덕분에 혼자 책방을 찾아온 내게 괜한 안도감을 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보아하니 대부분 혼자 이 책방을 찾아온 사람들인데 그들을 전혀 개의치 아니하고 사생활얘기로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가는 그들의 모습은 이 무미건조한 빌딩과는 참 대조적이다.

마광수의 에세이<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와 양귀자 소설<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그리고 원자력과 유전자에 관련된 책 두권 <원자력 제국, 로버트 융크 지음 | 이필렬 옮김>과 <인간은 유전자로 결정되는가, 서유헌, 홍욱회, 이병훈, 이상원, 황상익 공저>, 그리고 김건모와 이현우의 앨범을 챙겨들고 계산대에 갔다. 그걸보더니 간사가 약간 놀라면서 얘기한다.

-어 이현우 앨범도 있었네, 와
-두개 있던데요?ㅋ
-네? 어디요??

난 아주 짧은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곧 나는 그 간사님과 함께 이현우의 앨범을 찾으면서 그녀가 이현우와 어떤 관계인지에 대한 설명을 들어야만 했다. 교보문고에서의 점원들의 죽은 노동과는 무척 달라보이는 간사님의 태도는 날 약간 어색하게 만들었지만 그곳을 나오면서 도대체 이현우와는 어떻게 알게 된건지가 무척 궁금해서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부럽다. 그네들의 여유로움과 유머.

카페 흡연석에 앉아 오늘 나온 신문과 아까 사왔던 책을 훑어 보았다. 항상 이곳에 오면 세련미를 풍기려고 무척이나 노력하는 젊은 여성들이 매끈한 다리를 꼬고선 그 촉촉한 입술로 담배 연기를 공중으로 내뱉은 풍경이 날 사로잡는다. 그 순간 마광수의 에세이집의 글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꼭 금이나 다이아몬드가 아니더라도 양철로 된 귀걸이나 목걸이, 반지, 팔찌를 주렁주렁 늘어뜨린 여자는 아름답다.
화장을 많이 한 여자는 더욱더 아름답다.
덕지덕지 바른 한 파운드의 분 아래서 순수한 얼굴은 보석처럼 빛난다.
아무것도 치장하지 않거나 화장기가 없는 여인은 훨씬 덜 순수해 보인다. 감추려 하는 표정이 없이 너무 적나라하게 자신에 넘쳐 나를 압도한다.....
현실적, 현실적으로 되어 나도 화장을 하고 싶다.
분으로 덕지덕지 얼굴을 가리고 싶다. 귀걸이, 목거리, 팔찌라도 하여 내 몸을 주렁주렁 감싸 안고 싶다.
 현실적으로 진짜 현실적으로
아, 김건모의 노래는 너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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