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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에이스 사랑

난 에이스 중독자.
해태에서 만든 과자 이름이다.
특별히 달콤한 맛을 가졌다거나, 모양이 화려하다거나 같은 매력이라곤 없는
식상해 보이는 정사각형 모양에 모서리는 심심한 무늬로 만들어져있고, 맛도 심심하니,
심심하고 싱거운 타입인 나에겐 잘 맞는 모양이다.

껍데기엔 턱이 뾰족하고 쉬크해 보이는 여성이
향기나는 커피를 들고 이 크레커를 먹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나도 집에선 가끔 멀리 베트남에서 온 코코아 향이 짙은
달콤한 커피와 함께 에이스 한조각을 입안에서 녹이곤 한다.

그러나 뭐니해도, 나에게 있어서 에이스의 최고의 맛은 그 무엇과도
함께 해서는 안된다. 난 커피와 같은 음료 없이 그냥 입안에 넣어 이빨이 아닌
혀로 푸석한 이 과자를 부셔 담백하게 먹는 것이 참 좋다. 적당한 콤비는 그 어떤 것도 없다.
오로지 홀로.

물론 커피나 우유와 함께 먹는 것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난 가끔 라면의 본래 맛을 잃을 정도로
만들어 버린 짬뽕라면과 같은 류의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상해버린다. 라면의 맛은 라면 그
자체에 있다는 생각이다. 에이스라는 과자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인지 에이스를 혼자 있을 때 생각하며 먹는 습관이 있다. 여러 가지 다른 주변의 것들을
신경쓰지 않고, 나에대해 진지해질 필요가 있을 때 참 좋다. 특히 요즈음, 20대 후반에 접어든
요즈음엔, 무엇보다 내 자신의 인생, 가치관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즈음엔 말이다.

사랑에 목메고, 친구와 흥청망청하고, 신념에 젖어보는 것은 중요하다. 근데 최근 본 영화 '사과'에서 민석이
이별에 대한 이유를 "내 자신이 없어지는 것 같아"라고 얘기하는 대목은 참 와닿는 말이다.
그래서 가끔 두려운 생각이 드는 것이. 내가 애정을 쏟고 노력했던 대상으로부터 별다른 느낌이나
열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무리속에 있으면서도 참 외로워지는 것이 딱 요즘 날씨같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인지 끝내는 것 만큼, 시작하는 것도 어려운 건가.

난, 굳이 달콤하지는 않더라도 에이스와 같은 텁텁한 이런 인생이 싫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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