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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kech

고양이에 대한 관찰

고양이란 놈은 조심스레 관찰하도록 만드는 묘한 구석이 있다. 일찌기 나를 알아온 녀석들은 나의 고양이에 대한 관심을 조금은 알고 있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몇 달 전에 고양이를 그린 그림을 선보인 적이 있었는데, 기억나시는지..

고양이 스케치

고양이처럼

그때를 떠올려 보면 어느덧 내 손이 스케치북 위에서 고양이를 그리고 있어 좀 놀래면서도 한번도 제대로 그려보지도 않았던 것을 꽤 능숙히 그려버렸다. 그 그림과 함께 이렇게 썼더랬다.

관계를 초월한 듯한 고양이가 되고 싶다(중략)

고양이는 그런 바보같은 되풀이를 하지 않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다. 어쩌면 아련안 추억 따위는 가질 수 없는 불쌍한 존재일 수도.

고양이를 불쌍한 존재로 인식할 뻔하고, '초월'이란 단어로 이상적인 고양이를 묘사했던 나의 입장이 바꾸겠다. 고양이에게 심심한 사과를 보낸다. 그는 불쌍한 존재도, 그렇다고 뭔가에 '초월'적인 영물도 아니다.

고양이는 어느날 갑자기 다가왔다가 어느날 갑자기 떠난다. 그랬다가는 어느날 갑자기 다시 나타나곤한다. 그런데 그 만남과 떠남이 전혀 어색하거나 싱숭생숭하거나 허탈감같은 것도 없이 고냥 사색에 잠기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런 고양이의 입장이 되고 싶은 것이 어찌 나 뿐일까 싶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그런데 이미 100년 도 전에 몸소 고양이가되어 이야기를 쓴 소설가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나쓰메 소세키! 왜 하필이면 소세키인가 싶다. 아무튼 그의 첫 대박 작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을 읽고 있는데 재미가 쏠쏠하다. 고양이가 주인공인 책 중 ≪오늘의 네코무라씨≫ 다음으로 재미나다.

애초에는 소세키인지 하는 작가는 듣보잡이므로 관심이 없었고, 그냥 고양이 한마리가 그려진 두꺼운 책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고 외치고 있으니 자연스레 손이가게 된다.

용기를 무릎쓰고 한 구절 옮기자면 이러하다.(괄호는 내가쓴 말)

고양이는 발이 있어도 없는 것 같다. 어디를 가도 엉성한 소리 한 번 난 적이 없다. 하늘을 밟듯, 구르속을 가듯, 물 속에서 경을 치듯(경을 치다니 무슨 말인가?), 동굴속에서 비파를 타듯, 묘미를 보고 그것을 말로 나타내지는 못 한다고 하더라도 차고 뜨거움을 저절로 아는 것과 같다. 평범한 양옥집도, 멋진 부엌도, 인력거꾼네 아낙네도, 마부도, 식모도, 하나코 부인도, 부인의 영감님도 없다. 가고 싶은 곳에 가서 듣고 싶은 곳에 가서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고, 혀를 내밀고, 꼬리를 흔들고, 수염을 쭉 세우고 유유히 돌아올 뿐이다.

이 고양이가 머물고 있는 집의 주인은 선생이다. 세치가 있는 코털을 가진 이 선생은 너무나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 책을 몇자 보지도 못하고 잘꺼면서 항상 책을 손에서 놓질 않는다. 제대로된 하이쿠하나 짓지도 못하면서 지식인이네, 문학가네 하며 젠체하는데는 선수다. 가난한 주인공은 고생은 고생대로 시키면서 아내의 푸념을 무시한다. 누구보다도 빈둥대는데 열중하면서 돈에 열중하는 자들을 벌레보듯한다. 작가는 이 선생에 대한 묘사를 고양이의 눈으로 익살맞게 그려낸다.

그런데 고양이도 주인을 닮은 듯 하다. 고메한 이 고양이는 도둑이 들어와도 울줄 모르고, 쥐를 잡는데에도 취미가 없다. 자신의 꼬리를 잡으려고 빙글빙글 돌아보지만 잡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의 꼬리를 영물이라 여긴다. 고메한 이 고양이는 여타의 고양이들과 사람들을 자신보다 천하고 바보같은 존재로 여긴다. 때문에 그들과 관계를 맺어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참 편한 인간?이다.

내가 수학을 가르쳐주는 고1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를 만나러 가는 길은 마치 이 소설을 읽기 위해 책갈피로 꽂아 놓은 영화표(행복의 향기-오다기리죠가 나온다 흐흐)를 찾는 기분이랄까. 그 아이의 행동이 고양이와 어찌나 비슷하던지 짜증나다가도 우습고, 찌뿌리다가도 왠지 매력이 있는 아이다.

그는 여자에게 좀처럼 관심이 없는데 이유는 단 한가지 "귀찮아서"이다. 핸드폰도 전화나 문자가 오는 걸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에게 핸드폰이 필요한 이유는 그위 취미를 그곳에 담아 혼자 보기 위해서다. 그림그리는 걸 좋아하는 데 아무나 쉽게 그리지 않는 특별한 장비들을 그리니, 진정한 오덕이다. 글씨를 지운 지우게 가루를 무심하게 털고 있는 나에게 잔뜩 찌뿌린 얼굴로 "제발 이곳에 털란 말이죠"라며 지우게를 터는 유일한 장소이어야 하는 그곳(책상 뒤 음침한 곳)을 가리킨다.

고메한 선생을 관찰하고 있는 이 고메한 고양이를 관찰하며 키득대는 나는 또 어떠한가? 조금의 번뇌와 고민도 필요없이 그냥 고양이로 되었으면 하는 속좁은 바램을 말하고 있는 걸로 봐선 안봐도 비디오다. 티클하나 없이 순수한 그 선생과 고양이가 왠지 내 옆에 있는 것 마냥 친숙하고, 편하다.

아 오늘은 고양이를 그리는 꿈을 꾸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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