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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겨울끝자락에서의 움추림이란

무척이나 날씨가 풀려 낮에는 후드티에 두껍지 않은 코트하나 입었는데도 더웠다. 이제 봄이 꽤 가까워진 느낌은 너무나도 환영이지만 요즈음 내 기분은 마냥 그렇지만은 않은것이 건조하기 짝이없다.

건조함으로의 회기

랄까나... 사실 난 건조함 그 자체였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문학이란 것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거니와(수능준비 때문에 읽은 것들은 제외하고 말이다. 난 사이코 과학 미스테리 따위를 좋아했다. 앗 그것은 건조함과는 거리가 있는 건가..? 아무튼..)비디오가게의 흔하디 흔한 영화를 가끔 보는 것 외에는 감성을 자극하는 무엇인가를 딱히 찾지는 않았던 듯하다. 물론 펜팔친구에게 '가오'를 잡기 위해 시집의 시를 몇 편 배껴쓴 기억은 있다.

지금은 어설픈 스케치를 블로그에 올리는 행위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랄까. 소소한 일상의 관찰과 유머를 가진 영화도 즐기게되었고, 음악도 제법 좋아하는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왔다. 내 방의 벽 붙어있는 영화 <카페 뤼미에르>의 포스터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에 감동한다. (내게)새로운 것과 자극적인 느낌들에 반응하고 흡수하는 유연함을 가지게 되면서 진실로 삶이라는 것의 소중함을 찾게됬다는 거창한 말을 하기도 했다.

요즈음을 되돌아 보건데, 난 건조함으로의 회기랄까나... 외부의 자극과 그것으로부터의 변화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를 문뜩문뜩 갖게 된다. 물질로부터의 독립을 중요하게 생각하던것이, 물질로부터의 독립은 단지 현실회피에 불과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관습과 편견이 아니라 나만의 주관과 변화가 가득한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던것이, 세상의 관습과 편견은 이해할만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되기 시작한다.

관성이란

이 움츠림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너무 움츠리면 관성만이 남게되고 너무 화들짝거리면 차분히 배우지 못할 지도 모른다. 관성이라는 것은 너무 없어도 너무 많아도 좋지 않다. 더 넓은 세계와 더 큰 변화를 위해선 조금은 움추릴 줄도 알아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도대체 건조함과 관성, 움츠림. 이것들은 무슨관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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