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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Books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아래 글은 2006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보고 그적거려놓은 글이다.(혼자말이다!) 묻혀놓은 글들을 다시 읽어보는 재미도 나름 즐길만한 일상중 하나일거다. 특히나 요즘처럼 글들이 머리속에 들어오지 않을 때는 점점 말라버릴 것 같은 내 작은 감수성에 분무기를 뿌리는 듯한 기분이 들거든.

얼마전 광화문 교보문고에서의 새삼 과거의 애틋함을 두고 응큼한 관음증이 나도모르게 나를 사로잡아버린 걸 느끼고 깜짝 놀랬더랬다. 예전보단 덜 부산한 교보문고의 외국서적 코너에서 친절하게 손님을 맞고 있는 그에게 난 아무말도 못하고 놀란 고양이마냥 디자인북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 훔쳐보고 있었던 게다. 주말에는 교보문고에서 그를 볼 수 있다는 사실조차 까막게 잊고 말았던 내가 말이다.

...머리속으로 온갖 계산을 셈하는 고양이같은 앙칼진 귀여움을 지닌 그런 여자에게 '다뤄짐을 당해보고 싶어지는 아쉬움은 감출길이 없게 되버렸다.

내가 가장 맘에 들어하는 문장이다.(내가 쓴  글을 보고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럼이란 것도 모르는 나이가 되어버렸나..) 아무튼 이 소설엔 그런 만족과 쾌감을 기대하는 놈들이 반할만한 그녀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영화화 되었던 '조제와 츠네오'의 이야기는 오히려 부차적이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에 코멘트 한 말이지만 어쩌면 이 아슬아슬한 재미의 단편들은 슬프기도 하다.

꿈속에서마저도 나를 질투해버리는 거북이의 앙칼짐에 다뤄짐에 빠져 있는 난, 이글을 읽고 오랫동안 꿈꿔왔던 상상이 드디어 내 인생에도 펼쳐지고 있는거다. 때문에 난 이 책을 찐이와 필언니, 환웅님에게 추천하고 싶다.(그리고 거북이에게도 말이지) 그리고 발칙한 노쳐녀가 되길 희망하거나 이미 되어버린 노처녀 곡예가에게 다뤄짐을 받아보기를 희망하는 노총각들 모두에게 추천하노라!


요즘처럼 잊으려 했던 그녀와의 추억들이 다시 보고싶어졌을때..
그래서
그녀에게 전화를 해야할 지 망설이고 있을 때...

하필이면

학교 앞 작은 서점의 이 책이 그 '망설임'을 단 칼에 그어버리고선 소설속 옛 남자친구의 전화를 받고 머리속에는 온갖 응큼한 상상을하는 '그녀'들의 발칙함에 빠져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그 '망설임'때문인지 조제와 츠네오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보다 함께 수록되있던 다른 단편 소설들이 더욱 재밋었던 것 같다.

그것은

아슬아슬한 선을 넘나드는 섬뜻한 '그녀들'의 전문가적인 곡예가 내 전화를 받아든 그녀의 마음속을 훔쳐보는 나의 관음적인 눈길을 붙잡아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내 전화를 받지 않았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동시에 머리속으로 온갖 계산을 셈하는 고양이같은 앙칼진 귀여움을 지닌 그런 여자에게 '다뤄짐'을 당해보고 싶어지는 아쉬움은 감출길이 없게 되버렸다..

그녀는 바로

여동생의 애인을 묘한 상상에 가둬놓는 '낙천적인 몽상가 노처녀' 고즈에와('어렴품이 알고 있었어' 중) 에로틱하고 가느다란 다리를 가진 '앙칼진'조제와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중) 아무렇게나 몸을 맡겨오는 어린 조카를 보고 '먹잇감'이라며 쾌거를 지르고 있는 응큼한 속마음을 감추는 '이중인격자 이혼녀' 우네이다.('사랑의 관' 중)

이세편 정도만으로도 그녀들의 매력은달콤하면서도 슬프다.

그래서 복잡하고 깐깐한 그녀들의 '미각'을 모두 받아줄 그저 단순한 남자가 되기위해 노력을 마다하지 않으리라는 나의 다짐은 크리스 마스 이브에 소설속 '그녀들'에게 빠져 허우적 거린 보상일 것이다.

2006년 12월 마지막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