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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Images

남산 걷기 네번 째 - 과거를 집어삼킨 도시

남산걷기 네번 째는 역시 남산에 올라간 사진이 아니라 남산을 가는 길목의 도시한복판의 사진이다. 남산은 빽빽한 도시의 마천루와 거미줄같은 도로와 전기줄로 둘러쌓인 산이니만큼, 그것을 둘러싼 환경을 함께 보는 것도 좋은 여행방법이 아닐까싶다. 변명을 하자면 난 남산을 여행하려한 적이 없다. 사실 매일 출근하는 길들이 남산을 가는 길목이라 내가 가는 길, 내가 지내는 장소, 그 자체가 여행의 과정일 뿐이다. 영화 <시>에서 시상은 어떤 특별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아주 가까이 있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남산밑에 있는 사무실을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이 있다. 남산 밑자락과 남대문시장을 잇는 고가다리를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든 계단이다. 난 이 계단을 무척 좋아한다. 4-5월 간 찍은 필름의 삼분의 일은 이곳을 대상으로 했다. 왜냐하면 마치 과거를 삼키고 있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작은 절이 내겐 매우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건축물들을 유심히 보면 그곳의 역사와 현재의 숨소리가 느껴지는 듯하다.

이 절의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이 절의 이름에는 사실 관심이 없다. 그 절이 위치한 지리적 특성과 그 생김새가 가져다주는 인상에 주목하게 된다. 절이 위치한 건물은 매우 길쭉한 모양의 6-7층 정도되는 건물이고, 1층에는 유명한 분식집이 있다(매우 맛있는 튀김이 일품). 절은 가장 꼭대기에 있는데 분식집과 절 사이의 방들에는 언제나 여성들이 가득모여 미싱질을 하고 있다. 

파괴적인 자본주의가 아직 파괴하지 못한 과거를 집어삼키고 있는 듯하다.

"파괴적 성격은 단 하나의 구호만을 알고 있는데, 그것은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파괴적 성격은 단 하나의 행동만을 알고 있는데, 그것은 공간을 없애는 일이다. 맑은 공기와 자유로은 공간에 대한 그의 욕구는 어떠한 증오보다도 강하다." - 발터 벤야민 <파괴적 성격> 中

의도치않게 파괴적인 성격의 자본주의의 도시는 독특한 미학을 지니게 된다. 먼저 청계천 복원과 같은 어설픈 복제품들이 일주일에 겨우 몇시간 동안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도시 노동자들을 위한 인스턴스식 아름다움을 제공한다. 또 다른 도시의 미학은 인스턴스식의 도시를 조롱하는 듯한 위트를 가진 건물들의 발견을 통해서 볼 수 있다. 물론 이 경우도 매우 우연적이고 일시적일 수 있다. 곧 파괴될 것이므로. 이 점때문에 내가 마천루를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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