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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Books

<장정일의 독서일기1> ( 장정일 1994년)

1993년에 쓴 장정일의 <장정일의 독서일기1>을 읽다가 주목되는 글이 있어 몇가지 옮겨본다.

1.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문예마당, 1993)를 읽다. 오문과 악문으로 가득한 책. 여성적 글쓰기에 대한 형식적인 전략이 전혀 배려되지 않는 엉터리 페미니즘 소설. 노회한 김수현이 도리어 '언니'라고 불러야 할 만큼 닳고 닳은 상투.

2. 이 작품(너에게 나를 보낸다)를 쓰기 전의 약 2년간을 '작가가 아닌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변신욕망'에 시달렸다..... 스물한 살 때,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문학이 직업이 아니라면, 구역질이 난다!"......... 그래서, 방바닥에 등을 깔고 누워 하게 된 공상은, 1) 한 5년 쯤 태권도장을 다녀서 가급적 빨리 고단자가 된 다음 태권도장을 차린다. 2)한 1년이나 반 년 동안 요리사 학원이나 칵테일 학원에 다닌 다음 자격증을 취득해 레스토랑 주방장이 된다. 3)다시 대구로 내려가 어린시절 꿈꿔왔던 대로 여자고등학교 앞이나 여자중학교 앞에 분식점을 차린다...등등.

3. 사법처와 간행물 윤리위원회는 마광수와 장석주 씨를 음란물 반포죄로 고소하면서, '문학의 사회적 책임'을 들먹인다. 그러나 이 명제는 '사회 안정'을 필요로 하는 기득권 세력의 필요에 따라 늘 왜곡되어왔다. 예를 들어 문학이 사회적 불평등과 부도덕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했ㅎ고 문학 스스로 사회적 책임을 극대화했던 80년대에, 그들은 '사회안정'이라는 구실로 '문학의 사회적 책임'을 억눌렀다. 그런 자들이 '문학의 사회적 책임'을 언급하는 것은 무안스러운 일이다. '문학의 사횢거 책임'이란 냉정한 현실 분석을 통해, 화석화되어 더 이상 구실을 못하는 기성질서의 숨통을 터주는 일이다. <즐거운 사라>의 여주인공은 사회통념상 금지된 사제간의 애정행각을 통해 권위주의를 공격하고, 남성 중심의 성문화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레즈비언을 시험하기도 한다. 또 그룹섹스를 통해 순결과 성해방 이데올로기에 동시에 억눌린 성적 이중구조를 풍자한다.

당연히 제자리에 있어야 할 위계질서와 이성간에게만 허용된 성관계 그리고 남녀간의 1대 1 소유에 의한 규범적 관계를 '즐거운 혼란에 빠트리는 그의 작품이 추구하는 바는, 속으로는 병들고 겉으로는 멀쩡히 위장된 위선적인 사회에 대한 가식 없는 직시와 새로운 성윤리에의 요청이다. 또 그 '즐거운 혼란'은 답답한 일상을 초월한 어느 높이에서 한없이 낙관적이고 생 긍정적인 유토피아를 열어보인다. 이 점, 경건과 금욕으로 강제된 한국 문학사에서 희귀하고 소중한 예에 속한다. 물론 <즐거운 사라>가 이러한 선의의 해석을 감당할 만큼 수준 높은 작품이 아닐는지 모른다. 그러나 함께 문학을 하는 동료들 사이에서도 종종 간과되는 문제로서, 특정 작품의 수준이나 미적 형상화가 미흡하다고 해서 그 작품이 표현과 출판의 자유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사실 이러한 구실은 이념문학의 수난을 받던 80년대에, 긴급 구제를 바라는 작품에 대한 서명을 피하는 핑계로 흔히 쓰여졌다. 전체주의적 발상이라는 이유로, 나는 문학작품의 표현과 출판에 관한 한 어떠한 제재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 편이다....

4. 하루키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모음사, 1993)을 읽다.
그는 힘이 쭉 빠졌다.

5. 휴머니스트들은 결코 유토피아에 도달하지 못한다. 휴머니스트들은 휴머니즘이라는 오아시스에 발 뻗고 누워 자신의 근거를 떠나려 하지 않는다. 오아시스를 벗어난 사막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모험을 떠나는 휴머니스트는 없다.

그(장정일)는 거의 매일 쉴세없이 책을 읽는 것 같다. 내가 거의 책을 안보기 때문에 그의 일기에 나오는 책들중 내가 읽었던 책은 찾기 힘들었다.(들어는 봤어도..) 별 기대하지 않고 책을 펴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자니 정말이지 반드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도서 목록이 금새 머리속에 그려진다.

장정일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하루키,양귀자(희망) 가 쓴 소설들이나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과 남미의 혁명운동을 주제로 하고 있는 작품들(레지스 드브레의 '불타는 설원',에르베 바젱의 '하나의 불꽃은 또 하나의 불꽃을 삼킨다'와 영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은 꼭 빠른 시일내에 봐야겠다. 특히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는 여름에 고대에서 열렸던 2008 맑시즘에서 상영했었으나 다른일을 하느라 볼 수 없어서 안타까워 하던 참이었다. 책이 쓰여진 시대는 격변의 80년대를 지나고 소련이 몰락이후 진보적 영역의 혼란이 컸을 것이다. 장정일의 책에서도 당시의 혼란이 묻어나는 문학에 대한 관찰이 눈에 띄기도 하고 그 자신도 몰락한 유토피아적 환상에 대해 비판적임을 알 수 있다. (물론 맑시스트나 성해방론자와 이문열을 한 축에 놓고 얘기했던 것은 동의 할 수 없지만)

글이 감성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하루키에 대해선 <국경의 남쪽...>을 읽고 "그는 힘이 푹 빠졌다."며 한줄로 끝내버리는가 하면 어느 날에는 세 페이지에 걸쳐 하루키에 대한 냉철한 분석글을 옮겨놓기도 했다.(청탁받은 글인것 같다) 공지영에 대해서 단호히 비판하는 그의 일기를 보니, 공지영의 소설들도 읽고 싶어진다.(괜시리 그의 비판점에 대한 나의 비판의식 떄문인지ㅋ) 작가가 아닌 다른 삶으로의 욕망(변신욕망)에 대한 솔직함을 털어 놓기도 한다. 그가 쓴 소설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그런 내부 갈등의 표현이기도 하다.

아무튼 아직 오늘 읽고 있을 뿐이고 2권도 계속 읽겠지. 그리고 계속 몇번 씩이나 되돌아가서 다시 읽게 되는 드문 책이다. 난 완독하지 못하는 나쁜 습관뿐만 아니라 기억에 남겨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읽어보는 꼼꼼함이란 절대 없기 때문..앞으로 몇차례 이 책으로 포스트를 작성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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